세상의 큰 굴곡에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신을 의지하게 만든다. 밀레니엄 직전에는 세상의 종말을 무기로 많은 이단의 종교인들이 헛소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그 후 교황은 오래전 가톨릭의 중세 때의 잘못을 뉘우치기도 했고 1치 세계대전 후의 파티마 제3의 비밀을 모두 설명했다.
직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었을때는 미국언론들이 코무니스트'(공산주의자)라 며 교황과 거리를 두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 그의 후임으로 선출된 레오 14세 도 바티칸에서 장관을 지낸 프란치스코의 최측근의 추기경이었다. 그러니까 프란치스코 교황과
똑같이 이테리 이민자의 가정에서 자랐다. 그리고 미국의 위압으로 부터 가난할 수밖에없는 똑같은 남미에서 사목을 한 가난한사람을 위한 진정한 목자로 연이어 교황직을 이어가게 되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이 10년이 지나면 또 그 법을 위해서 다시 새법을 만들게된다는 가톨릭 교본이 있다.
가톨릭이 잘못 가고있을 때 종교개혁의 빌미를 주었다. 그리고 그 프로테스탄트들은 그동안 읽을 수 없었던 독일어 성서를 만들(번역)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했다. 이후 프로테스탄트는 미국으로 건너가 통제받지 않은 종교로 더욱 기업화 되었다. 그렇게 해서 많은 교파로 나뉘어 다시 전세계로 퍼져나간 후 지금은 처음으로 돌아갈 수 없게되었다.
그래도 가톨릭은 교구 사제들이 타락했을때 그 많은 수도회소속의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제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줬다.
문명의 큰 발전을 이끌어온 성서(경전)는 2000년 동안 그리고 오늘까지 권위와 소통의 도구로 이어져왔다. 성서는 오랜 역사만큼 이나 서구 언어들 중 히브리어와 일부 아람어로 처음 쓰였다. 그 성경을 기원후 382년에 신.구약 성서를 교부 예로니모가 그리스어,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이후 르네상스시대인 14~16세기 우리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이후 영국(1382)에서 프랑스어(1535), 독일어로(1552) 번역이 된다. 그리고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 성서를 장(Chapter)과 절(
)로 나뉘어지고 지금은 전세계 언어로 또 베스트셀러로 지금까지 소통되고 있다.
1991년 소련의 고르바초프는 누구의 지시없이 스스로 개혁( 뻬레스트로이카)을 하게되며 그 이유를, 훗날 요한바오로 2세를 알현한 후 영감을 받았다고 언론에 밝혔다.
1984년 요한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 내려 한국땅에 입을 맞추며 "순교자의 땅" 이라 말하고 기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시복시성 때 광화문에서 세월호 가족을 만나 위로했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한국 방문 때 예정에 없었던 광주로 향하여 5.18 유가족을 만났다.
한국의 민주주의의 토양을 만들어준 김수환 추기경은 '앞으로 성당을 크게 짓지마라'고 했다. 그리고 통일을 준비하고 북한의 교회를 복원하는 계획을 착실하게 마련해놓았다.
새 교황이 선출되고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미사에서는 똑같이 요한복음(10, 14)을 낭송하였다.
"나는 착한 목자다"
그런 내용이다. 우리 한국인은 위 내용을 이해하기가 싑지 않다. 양을 키워보았거나 목동을 본적이 없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성서의 배경이 유목민 사회의 얘기로 씌여서 전해왔기에 잘 이해하지 못한다. 또한 양이 어떤 짐승인지를 더욱 모른다. 모든 짐승 중 자신를 해치거나 죽임을 당할 때는 저항을 하거나 몸부림치고 울부짖는데 반해 오로지 양은 반항하지도 울지도 않고 죽음을 대한다.
혼탁해진 세상에 스스로 정화되지 못할 때 맞춰서 프란치스코 교황부터 지금 레오14세 교황의 즉위는 모든 인류에게 희망과 그리고 평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가톨릭의 교구 소속이 아닌 수도회소속의 사제가 연이어 교황으로 선출 된 일은 놀란 만하고 또 하늘의 뜻 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착하고 청빈한 목자로 약자를 도우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로 느껴진다.
여행을 해보면 세상의 모든 이들이 착하다. 그런데 비해 상대적으로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착함(선함)이 멀어진 민족으로 변해버렸다.
보통사회를 지탱하는 성직자와 교사는 언제나 나침반처럼 존경의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성직자가 되기를 지원하는 사람이 없고, 또 교사는 사나워진 나이어린 학생들 때문에 교권이 무너졌다고 교사직을 버리고 떠나는 현실을 보게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기로는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속담이 있다. 사실은 그 원인을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배운 가정교육이 제대로 된 메뉴얼이 없고 가르쳐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말을 듣지 않는 학생은 잘못된 가정교육을, 학교에서 고칠 수가 없고 그릇된 사회는 종교단체에서 순화시키기 힘든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호텔과 택시를 경험으로 말해보겠다.
최고급 호텔을 흔히 당연히 값비싼 가치로 따지지만 사실은 최고급 종업원이 있기때문이며 최상의 직원은 다름 아닌 젠틀한 고객들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업원이 함께 귀하게 길들여져 예절과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택시도 마찬가지다. 서투르고 조급한 운전기사는 학원이나 고용회사의 교육훈련에서 터득한것보다 손님에게서 배운다. 승객이 알고 있는 방대한 지리(네비에 없는 지름길)를 배우고 익혀서 노련한 솜씨로 응대하게 되는 것이다. 친절과 말솜씨도 승객이 먼저 환경을 개선시키고 모범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온 세상이 더 평화롭고 빛과 소금처럼 역할을 보여줄 레오 14세 교황의 기도가 꼭 이뤄지기를 우리도 함께 기도한다.